2022. 1. 29. 21:38ㆍIT/Review
들어가며
예전에 오큘러스 퀘스트 2 구매기를 이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간단한 VR 세계 입문기와,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감을 남긴 글이었는데요. 마지막에 페이스북이(이제는 메타) "인피니트 오피스"라는 VR 오피스를 21년 말에 내놓을 것이라 정보를 남긴 적이 있습니다.
이후, 메타는 21년 여름에 "호라이즌 워크룸"이라 불리는 VR 오피스의 오픈 베타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반년간 그 이름을 지속하고 있는 걸로 보아, "인피니트 오피스"는 가제였던 듯합니다. 하기야, 인피니트 오피스는 뭔가 "무한상사" 같은 어감이긴 했죠.
오픈 베타가 열리자마자 체험해보긴 했었으나, 후기를 남기기가 귀찮아 반년을 묵히고 있다 이번에 팀 내에 오큘러스 사용자가 더 생기게 되면서 실제 회사 팀원들을 대상으로 VR 회의를 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미약하게나마 워크룸이 발전한 부분도 있었고, 실제 업무에서 사용 가능한 지를 직접 테스트할 수 있었기에 오히려 미뤄왔던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실제 VR을 통한 가상세계 회의를 경험한 후기를 담은 글입니다.
죽어도 메타버스 못 잃어
요즘은 여기저기서 하도 '메타버스'거려서 귀에 못이 박인 사람도 있을 듯하다. 예전 "4차 산업혁명" 하며 호들갑 떨던 시기가 연상되어 불안한 마음도 약간 있다. 특히나 이번 유행은 NFT와의 결합으로 몇 천만원, 몇 억의 돈이 왔다갔다 하는 이야기까지 계속 거론되니 대중의 어그로가 안 끌릴 수가 없다. 결국 '메타버스도 또 하나의 호들갑인가?'에 대한 대답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으며, 몇 년이 지나봐야 알게 될 듯하다.
이러한 메타버스 업계의 선두는 누구일까? 의심할 여지 없이 다들 닉값하는 '메타'를 뽑을 것이다. 사실상 페이스북은 SNS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버린 지는 꽤 됐다. 마크 저커버그가 몇년 전부터 VR에 팍 꽂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페북이랑 인스타그램 운영을 그렇게 개판으로 하나?) 그 VR을 향한 집념이 결국 오큘러스 퀘스트 2라는 역작을 낳았고, 덕분에 "돈 남아 도는 너드들이나 손 대보는 취미" 정도였던 VR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조금 완화된 듯하다. 그러나 메타의 지향점은 단순히 "VR의 대중화" 정도에 머물러 있지 않다. 진정한 메타버스의 실현, 가상이 곧 현실세계와 동일하게 취급되는 세계가 곧 메타가 바라보는 방향일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기기가 많이 보급된다고 메타버스 세계가 도래하진 않는다. 스마트폰도 보급 초창기에는 이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극히 적었기에 기기의 활용도를 충분히 이끌어낼 수 없었다. 현재의 VR 시장도 마찬가지로 양질의 컨텐츠가 모자라다. 메타버스가 우리의 미래인 지 아닌지는 아직도 대중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 심사 결과는 곧 이 "컨텐츠"가 어떻게 현실 세계에 적용될 것인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메타도 이 사실을 당연히 인지하고 있기에, 주기적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행하고 있다. 몇 가지 시도들을 해보고 있으나, 그 중 나에게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바로 "호라이즌 워크룸(Horizon Workrooms)"이었다. 호라이즌 워크룸은 VR 세계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업무 회의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앱이며, 21년 여름부터 오픈 베타를 실시하고 있다. 재택 업무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유토피아적 업무 환경과 동시에 온기 없는 삭막한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혹자는 "회사 가는 것도 스트레스, 직장 사람들 얼굴 보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이게 왜 단점?"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도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다른 직장이었다면 그런 생각을 강하게 가졌을 지도 모르겠다. 회사가 놀러가는 곳도 아니고, 굳이 친밀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떠나서도 "현장감"의 부재가 업무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화상회의를 할 때에, 상대방이 내 말을 경청하고 있는 지 더욱 확인하기 어렵고, 서로간 의견이 맞지 않을 때에 화이트보드에서 그림을 그려가며 인식을 맞춰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러한 원격 근무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Miro 같은 화이트보드 앱도 나오고, 실제로 줌에서 타블렛을 사용하는 경우도 늘고는 있으나 여전히 모니터 너머의 사람들과의 심리적 거리는 잘 좁혀지지 않는다.
호라이즌 워크룸은 그러한 현장감 부재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실제 회사 회의실에 들어와 얼굴을 마주보며 회의를 하는 듯한 현장감을 제공하며, 서로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화이트보드도 제공하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어떤 느낌인 지 알아보도록 하자.
소개합니다, 호라이즌 워크룸
호라이즌 워크룸은 https://oculus.com/workrooms 에서 이용이 가능하다. 여기에서 회원가입을 통해 워크플레이스(슬랙으로 친다면 워크스페이스같은 개념)을 만들 수 있다.
워크플레이스를 생성하면 기본 Workroom이 하나 생성된다. 슬랙으로 치자면 이게 "채널"과 유사한 개념으로, 내부적으로 다른 워크룸들을 생성할 수 있다. 워크플레이스 내부에선 다른 그룹웨어들이 그러하듯이, 자료 공유나 스케줄 편성, 그리고 채팅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워크룸 참여"가 있다.
워크룸에 들어가보자
워크룸에 들어가는 방법은 오큘러스 퀘스트를 이용하여 접속하는 방법과 그냥 웹브라우저상에 접속하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당연하게도 워크룸은 VR 오피스이므로 기본적으로 오큘러스 퀘스트 이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도 VR 기기에서의 이용 경험을 주로 서술할 예정이다.
오큘러스 퀘스트의 앱스토어에서 Horizon Workrooms 앱을 다운로드 받고, PC에도 Oculus Remote Desktop을 설치하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Oculus Remote Desktop은 필수는 아니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워크룸에 접속은 하되, 내 PC를 사용할 수가 없게 된다.
처음 워크룸에 입장할 때에는 아바타 설정과 책상 스캔을 하도록 한다. 오큘러스 퀘스트로 하여금 실제 사용하는 책상의 위치를 인식시키는 것이다. 인식하고 나면 내 책상에서 키보드가 있는 부분이 패스스루로 볼 수 있게 된다.
오피스 구경 좀 해볼까?
워크룸은 다양하지는 않으나, 몇 가지 커스터마이징을 제공하고 있다. 먼저, 장소를 오두막/빌딩으로 원하는 쪽을 고를 수 있으며, 팀이 원하는 곳을 선택해 바꿔가며 회의를 할 수 있다. 우리 팀은 회사 건물에서 얼굴을 본 지가 오래되었으므로, 실제 판교 느낌이 나는 건물을 선택해 회의를 했다.
그 외에도 책상 배치를 바꿔서 원탁형, 일자로 늘어전 책상 형태 등으로 사무실 책상을 재배치할 수 있다.
베타 초기에는 없던 기능인데, 오피스 내부의 요소들을 약간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 회사 로고를 넣는다든가, 포스터를 넣을 수 있는 정도. 테스트 느낌으로 적당히 꾸며봤다. 절대로 사심이 들어간 것이 아니다.
VR에서 컴퓨터 보기
Oculus Remote Desktop을 이용하면 내 오큘러스 퀘스트와 PC를 연결하여 원격 화면을 볼 수 있다. 아래 검은색으로 가려진 곳은 실제 내 키보드가 표시되는 화면으로, 타자를 치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화면은 기본적으로 나만 볼 수 있지만, 공유기능을 통해 모든 팀원이 볼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상호작용을 해보자
줌과는 다르게, VR 세계에서는 서로 자신의 아바타를 가지고 의사소통을 하게된다. 그리고 이 아바타는 사용자의 목소리에 따라 입모양을 바꾸고, 어조에서 표정 변화도 캐치하며 핸드 트래킹을 사용 중일 경우엔 손 모양도 그대로 반영한다. 그야말로 나의 또다른 분신인 것이다. 특히나 워크룸에서는 이 아바타의 위치에 따라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이 다르다. 이러한 디테일한 요소들이 실제 오피스에 있는 현장감을 더해준다.
사실, 현재 워크룸의 기본적인 기능들은 줌에서 제공하고 있는 것들보다는 못 하다. 그러나 딱 하나, 워크룸이 다른 원격 회의 프로그램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기능은 바로 이 "화이트보드" 기능이라 할 수 있다. 책상 근처의 빈 공간을 가상 화이트보드로 설정하고, 해당 영역에 컨트롤러를 뒤집어 펜처럼 사용하면 실제로 그림이 그려진다. 코로나 이전에 그러했듯이, 팀원들과 화이트보드를 같이 바라보고 그림을 그려가며 토론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브없찐(VR 헤드셋 없는 찐따)은 어떻게 해요?
오큘러스 퀘스트가 없는 사람도 참가가 가능하다. 이 경우, 아바타를 가지고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줌으로 화상회의를 하듯이 접속된다.
대체로 다른 화상회의와 동일하되, 이렇게 VR 속 환경이 같이 보인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평가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으로 나눠서 평가해보고자 한다.
좋았던 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현장감
원격근무 시대 이후로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같은 현장감을 주기 위해 여러 회사에서 갖가지 시도를 했었다. 그 웨이브를 잘 탄 제품 중 하나가 바로 Gather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나는 Gather의 향후 성공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이다. 2D 탑뷰 게임을 차용한 점은 사용자의 흥미를 끌만하나, 이는 단순히 화상회의에 게임 요소를 집어넣었을 뿐이기에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 외 발적화 문제로 인한 램 누수 등도 지적하고 싶으나 이 글은 개더 리뷰가 아니므로 짧게 줄인다)
워크룸은 앞서 언급한 대로 현장감을 높여주기 위한 여러가지 장치를 마련했다. 사용자의 표정을 반영하는 아바타, 입체적인 음향, 디테일한 손짓 표현 등을 통해 우리는 정말로 회사 회의실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현장감은 직원들이 회의에 좀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창의성을 발휘할 기반
앞서 언급한대로, 개인적으로 워크룸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점은 바로 "화이트보드"다. 단순 언어 소통만으로는 모자라는 부분을 보완할 수 있으며, 서로 지근거리에서 대화를 하며 설계를 하는 행위는 구성원들의 창의성과 생산성을 더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브라우저로 이게 되네
이것은 단순 개발자로서의 의견이기도 한데, VR 미사용자들은 브라우저만으로도 회의가 참가 가능하단 점도 높게 쳐주고 싶다. VR 세계를 브라우저로 직접 볼 수 있게 구현을 했다는 의미인데, 이 기반 기술을 별도의 네이티브 앱 없이 오로지 웹앱으로만 달성했다는 점은 오큘러스 팀이 이 서비스 구현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다.
아쉬운 점
VR이 없으면 제한사항이 너무 많다
현재 베타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VR이 없는 사람들은 아바타조차도 갖지 못한다. 비슷한 플랫폼인 VR챗은 VR을 의도하고 만들어졌음에도 VR 미사용자들도 아바타 생성과 조작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워크룸은 그 부분을 배제했다는 점이 아쉽다. 일부러 제한사항을 둠으로써 "나도.. VR로 해보고 싶어!" 라는 마음을 갖도록 유도하기 위함일까? 의도야 모르겠지만, 아무리 메타버스 시대가 도래한다 하더라도 VR 기기를 못 쓰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을텐데, 이들을 위한 배려가 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결국 회의 용도밖에 없나?
Infinite Office를 오큘러스가 처음 공개했을 때에는 해당 서비스가 단순 회의 앱을 넘어 개인의 업무에도 사용될 수 있는 서비스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재 워크룸은 사실상 다른 사람들과의 회의 용도 외에는 마땅한 사용처가 없다. 이게 단순히 인피니트 오피스의 일부이고, 나중에 더 확장되는 서비스가 나오는 것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 오큘러스도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고민을 할 것 같은데, 현재 VR 기술로는 8시간 항상 사용 가능한 서비스를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전력부터 착용감까지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기에, 현재 단계에서는 회의만을 위한 사용만 가능할 듯하다.
원격 데스크탑의 한계점
리모트 데스크탑 앱을 통해 실제로 컴퓨터를 조작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했으나, 두 가지 한계점이 있다.
첫째는 "해상도가 강제로 낮춰진다"는 점이다. 체감상 1920x1080이거나 그 아래로 내려가는 듯한데, 최근 대부분의 컴퓨터는 이것보다 큰 해상도를 사용하고 있으니 불편함을 야기한다.
두번째는 "듀얼 모니터 지원이 빈약하다"는 점이다. 위의 인피니트 오피스처럼 여러 모니터가 동시에 뜨는 형태가 아니라, 표시 자체는 모니터 하나만 되고, 토글 버튼을 통해 다른 모니터로 이동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사실상 모니터 하나에 가상 데스크탑을 여러개 띄운 것과 다를바가 없으므로 본래 듀얼 모니터를 쓰던 사람은 생산성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아직도 부족한 커스터마이징
베타 초창기에 비해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긴 했으나, 아직도 커스터마이징이 아쉽다. 이런 가상 세계는 직접 꾸미는 데서 오는 재미도 어느 정도 따라와야 하는데, 현재까지는 벽에 걸린 그림 바꾸기 정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유저들이 직접 만든 오피스 환경을 스토어에 올려서 공유하는 플랫폼도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채팅 앱인 VR챗도 유저들이 직접 만든 수많은 맵들이 많으며, 이것이 VR챗에 유저가 계속 유입되는 유인이 된다. 페이스북의 지난 행보를 보면, 그 정도 개방성이 가능할 지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더 좋은 메타버스 세상을 위해 저커버그 형님이 좀 더 고민해줬으면 싶다.
그래서 VR 오피스 시대가 올 것 같나요?
아직까지는 "글쎄"다. 확실한 건, 현재 기반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생각한다. 오큘러스 퀘스트는 VR 헤드셋 중에선 가벼운 축에 속하나,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기에 이걸 하루종일 머리에 달고 일을 한다면 목 디스크는 피해갈 수가 없다. 즉, 하드웨어 기술이 더 발전하지 않으면 업무에 완전히 침투하긴 어려울 것이다.
아마 메타도 현재 단계에서 바로 VR 오피스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 것 같다. 현재 이들이 생각하는 것은 "메타버스 세계의 선두 주자가 된다" 정도가 아닐까? 나중에 정말로 메타버스의 시대가 온다면 가장 기술 투자를 많이 해 왔던 메타가 업계의 주인이 될 것은 자명하니. 그 때쯤이면 현재 리뷰하는 내용들이 우스울 만큼 진보된 VR 오피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