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23. 23:45ㆍRandom
들어가며
2021년을 떠나보내며 글 하나를 썼다.여러가지 회고도 있었고, 마지막에 "20대의 마지막인만큼 뭔가 여러가지를 해보고 싶다"며 글을 끝냈었다.
블로그에는 별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지만 난 그 사이에 정말 많은 것들을 해 왔다. 아직 올해의 절반 정도 왔지만, 이미 일어난 이벤트만으로는 작년에 일어난 이벤트의 총량을 넘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낸 20대의 마지막이 정말 어땠는지, 이로부터 어떠한 교훈을 얻게 될 것인지는 2022년 말이 되어서야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하튼, 요트 면허 취득도 그 이벤트 중 하나였다. 블로그 독자들은 물론이고, 나와 실제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엥???" 하며 깜짝 놀란 사건 중 하나다. 이 글은 내가 어쩌다가 요트 면허를 따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들은 어떠했는지를 기록하는 글이 될 것이다.
아니 자동차도 없는 놈이 요트 면허를 왜 따요???
아직 난 내 자가용도 없다. 가족이 돌려쓰는 NF 쏘나타를 거의 내 것마냥 운전하고 다니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내 차는 아니다. 그리고 운전을 그렇게 즐겨하는 편도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당장에 구매해야 할 운송수단이 있다면 그건 의심할 여지없이 "자동차"일 것이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다닐 일은 없을테니.
그렇기 때문에 내가 요트 면허를 땄다는 사실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무수히 많은 물음표를 받았다. 혹자는 '아.. 낚시나 항해같은 걸 좀 좋아하는 성격이었나?' 식으로 추측하기도 했는데, 정말 죄송하게도 난 낚시를 좋아하지 않으며, 내 인생에 앞으로도 배를 탈 일은 별로 없을 것이라 장담한다. 그래서 더더욱 "근데 왜 땄냐고!!" 하는 목소리들을 듣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 남들이 잘 가지고 있지 않은 자격증이라 간지가 날 것 같았으며
- 어차피 이 시기가 아니면 앞으로 따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21년 회고록에 썼던 글에서 난 이런 말을 했었다.
요 몇 년 사이에 생긴 모토가 있다. '할 수 있을 때 다 해보자' 세상 만사를 '해보고 싶은 것'과 아닌 것으로 나누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둬보기로 한 것이다. 지금 나에게 흥미없던 일들이라도, 나이를 먹고 나면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최대한 여러가지를 체험해보려고 노력했다. 그 중 하나가 소박하지만 '탈색하기'였고, 덕분에 파란머리 보라머리 초록머리 다양하게 갖고 놀아봤다.
요트 면허도 나에겐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이가 더 들거나 연애를 하게 되면(ㅠㅠ) 여기에 온전히 시간과 돈을 쏟기는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요트 면허는 어떻게 땁니까?
요트 면허를 따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 요트 면허 시험장에 가서 시험을 보는 것
- 요트 면허 시험을 면제받는 면제 교육을 따로 받는 것
요트를 잘 몰 자신이 있다면야 시험장에서 바로 시험보고 통과해버리면 될 테지만... 내가 개인 요트가 있어 미리 연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도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면제 교육을 받는 쪽으로 많이 안내를 하고 있었다. 아마 면제 교육장 입장에서도 이게 더 돈이 잘 벌려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요트 면제 교육은 5일간 총 40시간의 교육을 받게 된다. 이 40시간은 실기 20시간, 이론 20시간으로 또 나뉜다. 이렇게 교육을 전부 이수하면 면허가 발급된다. 운전 면허와 다르게 교육을 수료하기만 해도 요트 면허가 나온다는 점은 신기한 부분이다.
요트 면제 교육장은 검색 결과 위와 같이 나온다. 당연하겠지만 강이나 바다 주변이 많다. 여기에서 자신이 사는 곳과 가까운 곳으로 접수를 하면 된다. 수강료는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는 것 같았는데, 인터넷으로 조사해봤을 땐 평균적으로 80만원이었던 것 같다. 내가 수료한 곳도 80만원이었다.
그런데 접수를 하려고 꽤 오래 전부터 각을 봤는데, 생각보다는 요트 교육 과정을 신청하는 데 어려움이 조금 있었다. 왜냐, 강의 수 자체가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트 면허'는 동력수상레저기구 면허의 한 종류에 해당한다. 동력수상레저기구에 해당하는 면허는 요트 외에도 일반이 존재하는데, 모터보트 면허를 의미한다. 요트가 낭만은 있어도, 모터 보트에 비해서는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다. 바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거나, 동력기관을 사용해도 마력이 시원찮다거나... 그래서인지 과정 개설은 모터보트 쪽이 요트보다 많이 열리는 편이었다. 특히, 겨울철에는 강이 얼거나 해서 요트 운행 자체가 힘들어서 개설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어떤 지역은 강의를 개설해도 인원 수를 채우지 못해 폐강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요트 면제 교육 과정에선 뭘 가르치나요?
주의! 필자는 요트의 ㅇ자도 모르는 사람이며, 요트 교육장에 따라 가르치는 내용이 다소 상이할 수 있으니 아래 내용을 너무 맹신하진 마십시오! 어디까지나 "요트 면제 교육 들으면 이런 것 정도 배울 수 있음" 정도의 느낌을 주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이론 부분은 굳이 자세히 적지 않겠다. 대략적으로는 요트의 기원, 요트 각 부품의 명칭, 요트의 종류, 요트가 바람을 맞으며 항해를 할 수 있는 과학적 원리(비행기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그 베르누이 효과다) 등등을 배웠다.
실기에서는 크게 아래와 같은 부분들을 배웠다.
매듭묶기
요트 항해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4가지 매듭이라고 한다. 각 매듭마다 특성이 있어서 상황에 따라서 잘 써야한다고. 특히 클로브 매듭은 한번 묶으면 인위적으로 푸는 동작을 하지 않는 이상 절대 안 풀리는 매듭이니 장난으로라도 사람에게 쓰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기주 - 모터만 가지고 운전하기
진정한 요트는 동력 기관의 도움따위 받지 않겠지만, 그랬다간 출항조차 못할 수도 있다. 현대의 요트들은 정박하거나 출항할 때 등의 상황을 보조할 수 있도록 출력이 약한 모터를 탑재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돛을 펴지 않고 항해할 수도 있으므로, 모터를 가지고 운전하는 방법을 배웠다. 실습 내용은 대체로 "나침의를 보고 여기서 90도 방향 더 틀어라!" 식으로 방향 전환하는 내용이 주였다.
범주 - 돛을 펴서 항해하기
요트는 돛이 있기에 비로소 요트가 된다. 돛은 바람을 받아 요트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제공해준다. 요트 실습의 대부분은 바로 이 범주에 할애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돛을 조절해가며 항해하는 법을 배웠다. 특히나 앞에서 부는 바람이냐 뒤에서 부는 바람이냐에 따라 태킹과 자이빙이 나뉘게 되고, 바람의 방향이 왼쪽이냐 오른쪽이냐에 따라 분주하게 선원들이 돛을 전환해줘야 했다.
각 역할 숙지
요트 면허를 따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사실인데, 요트는 사실 팀으로 운항하는 게 보통이다. 크게 아래 4가지 역할군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 스키퍼 : 틸러를 쥐는 사람, 선장이다
- 윈치맨 : 집 세일(Jib Sail. 보조 돛)의 방향을 바꿔주는 사람. 좌/우 포지션에 각각 한명씩 있어야 해서 2명이 필요하다. 왼쪽을 포트 윈치맨, 오른쪽을 스타보드 윈치맨이라고 부르더라
- 바우맨 : 선상에 서서 배의 현재 상황을 브리핑해주는 역할. 스키퍼는 요트의 맨 뒤에 위치하므로 배 앞에 어떤 게 있는 지 모를 수 있다. 그를 위한 눈이 바우맨이라고 한다.
- 메인맨 : 메인 세일(Main Sail. 주 돛)을 조정하는 사람인데, 우리 실습 때에는 그냥 강사님이 메인 세일을 다뤄주셨다.
적당히 바다를 항해하면서 우리는 이런 지식들을 습득했다.
요트 면허를 따면 바로 요트 타고 항해 나갈 수 있나요?
법적으로는 가능할텐데, 전반적으로는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분위기다. 한 때 운전 면허도 너무 물시험이 되어서 면허 취득 후에도 따로 추가 연수를 받아야만 하던 경우가 있었다. 요트도 40시간만에 취득하기엔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는 듯하다. 그래서 교육장에서는 면제 교육 외에도 요트 면허 소지자를 대상으로 하는 추가 교육들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아무래도 단독으로 항해를 나가려면 배워야 할 것들이 더 있을 것 같다. 무선 장비 조작법이라든가, 돌발 상황 발생 시에 대처법 등... 한 편으로는 '그럼 40시간만에 면허를 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요트를 사지 않을 건데 면허를 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가장 베스트는 물론 본인이 요트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요트를 모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재력에선 불가능한 일이고, 대부분은 요트 클럽(동호회)을 통해 대여를 한다고 들었다. 요트를 구매한 선주들이라고 자동차마냥 매번 쓰지는 않으니, 놀리고 있을 때에는 별도로 대여업을 하는 듯하다. 그렇게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서 요트 빌려다가 한 번 항해하고 1/n로 나눠 결제하고 그런 식인듯? 한데 난 면허 취득 이후로 요트를 몰지 않았으므로 잘 모른다. 나중에 알게 되면 여기에 갱신하도록 하겠읍니다.
또한, 이번 교육을 통해 알게된 사실인데, 수강생들 중에서는 해양레저사업을 위해 이 면허를 따는 사람도 있었다. 나름 납득이 가는 법안이다. 요트나 보트로 돈을 벌 사람이 적어도 운전할 만한 구색 정도는 갖춰야 할테니... 그러므로 요트 면허를 취득했다는 사실이 무조건 그 사람이 요트 자가 소유자라는 뜻은 아니란 셈이다.
나의 총평은
요트 운전 실습에 참가했더니 면허를 줬어요!
정말 간지 하나만 보고 시작했던 과정이었기에 첫 날에는 약간 후회를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실기 내용도 익숙해지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여기저기를 누비는 과정들이 꽤 재미있게 다가왔다. 요트 동호회가 왜 생기는 지도 이해가 갔다. 처음에는 '시간만 채우면 면허를 주는 과정'이란 부분에 적지 않은 반감이 있었는데, 우려한 것에 비해 실기 내용은 알찼던 것 같고, 관점을 '요트 실습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면허를 덤으로 주는 것'이라고 바꿔보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 겪어볼까 말까한 이색 체험이 아닌가. 나는 이번 교육 과정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과 간지나는 면허 두 가지를 동시에 얻었다.
지금은 장롱면허 신세지만, 언젠가는 또 이게 빛을 발할 때가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