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알못의 천체사진 입문기

2021. 4. 11. 01:29Hobby/Photo-Trip

들어가며

천체사진은 예전부터 저의 로망이었습니다. 찍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좀처럼 실행에 옮길 기회가 없었는데, 작년 2020년에 드디어 천체사진에 입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낀 점들을 그냥 머릿 속에만 남기기에는 조금 아쉬워 오랜만에 소프트웨어 관련 글이 아닌 글로 돌아왔습니다. 천체 사진이 찍고 싶으나 어찌해야 할 지 모르는 분들께 이 포스트가 좋은 인사이트를 던져주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의! 이 글의 작성자는 사진의 ㅅ자도 모르고 카메라의 ㅋ자도 모릅니다! 전문적인 내용을 원하시는 분들은 실망하실 것입니다.

별을 수놓은 듯한 밤하늘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내가 찍은 여름 은하수. 중앙 하단에 빛나는 두 별은 각각 목성과 토성이다. ILCE-7M3/20s/ISO 1250/Samyang MF 14mm F2.8 MK II SONY FE

아무리 노력해도 수학 점수가 오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문과를 택하긴 했었으나, 나는 그래도 나름 과학 매니아다.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할 때에도 SF 기반의 컨텐츠라면 나는 점수를 후하게 주는 편이다. 특히 그 중에서 제일 좋아했던 것은 천문학 계열로, 대학생 시절 "우주와 인간"이라는 교양에서 A+을 받아내기도 했다. 밤하늘 저편 어딘가에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만큼 설레는 게 어디 있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즘 세상에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 

"보이냐? 이게 바로 지상의 별이다"

SF 애니메이션 "마크로스 제로"에서는 문명과 동떨어진 섬에 현대인들이 잠시간 머무르게 된다. 이 때, 저녁에 전구를 켜고 생활하는 군인에게 한 여성이 다가가 "당신들은 밤하늘의 별을 훔칠 생각이십니까?" 라고 말하자 군인은 문명의 편리함을 옹호하며 "? 머래 이게 지상의 별인뎁쇼" 라고 맞받아친다. 이 말대로, 현대 사회는 이미 온갖 군데 만들어진 별(== 전등)이 즐비한 탓에 밤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엄근진하게 말하긴 했으나 매일매일 별 보면서 문명 상태 500년 전으로 되돌리기 vs 그냥 살기 중에 고르라면 무조건 후자 고른다.

그래도 살면서 별이 수놓인 듯한 하늘을 볼 수 있던 때가 몇 번 있었다. 본가가 시골인 덕에 약간 외진 곳으로 나가면 가로등이 전혀 없어 가능했다. 그런 밤하늘을 보게 되면, 아마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인증샷을 남기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폰카로 밤하늘을 찍으면 그냥 액정에 김 한장만 덩그러니 떠오를 뿐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뜬 보름달이 예뻐서 폰카로 찍어보려 했던 사람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럼 DSLR이나 미러리스가 있으면 다 천체사진 찍나?

사실 천체 사진의 핵심은 폰카냐 아니냐가 아니다. (물론 좋은 장비를 쓰면 좋은 사진이 찍히겠지만!) 찍는 방법의 문제인데, 카메라의 원리를 들여다보면 어떻게 찍어야할 지 답이 나온다.

이해를 돕기 위한 도식..이라기엔 너무 대충 그렸나? 죄송 ㅎㅎ

세상 모든 카메라는 근본적으로 원리가 똑같다. 위의 사진을 보면, 카메라 내부에 빛을 전자신호로 바꿔주는 센서(필름 카메라라면 필름에 해당)가 있고, 셔터가 그 센서를 가리고 있다. 그리고 빛이 카메라를 열심히 때리고 있다. 그림 상으로는 빛이 한 줄기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과학 상식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카메라는 지금 온갖 군데에서 오는 무수히 많은 빛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카메라 촬영 버튼을 누르면 셔터가 아주 잠깐 열렸다가 재빠르게 닫힌다.
센서가 빛을 데이터로 변환시켜 이런 예쁜 사진들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고증 오류가 있다. 그저 빛 그 자체인 진짜 백예린을 찍었다면 이 사진은 새하얗게 나와야 정상이다.

카메라의 촬영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 때서야 셔터가 열리고, 이 순간에 빛이 센서로 들어오게 된다. 그 후, 카메라는 재빨리 셔터를 다시 닫아버리고, 센서는 자신한테 들어왔던 빛을 데이터로 변환해서 이미지 파일로 만든다.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든, DSLR이든 이 과정은 다 똑같다. 그리고 이 셔터가 잠깐 열려있던 시간을 "노출 시간" 혹은 "셔터 스피드"라고 부르는데, 보통 이 시간은 1/30초, 1/60초 정도로 매우매우 짧은 찰나의 시간이다. 한낮은 태양이라는 넘사벽 광원이 있고, 실내에는 조명이 있기 때문에 이런 매우 짧은 시간으로도 충분히 좋은 사진이 나온다.

그러나 밤에는 어떨까? 모두가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일단, 우리가 보는 것처럼 나오질 않는다. 아주 어둡거나, 밝게 나오되 노이즈가 심하게 생기거나, 밝게 찍히되 인수분해하는 한석원마냥 잔상이 생긴 경우 등 정말 갖가지 실패가 나온다. 안 궁금하겠지만 실패한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 어둡게 나왔을 경우 -> 말 그대로 빛이 너무 없어서 1/30초 정도의 셔터 스피드로는 택도 없었기 때문이다.
  • 밝게 나왔지만 노이즈가 심하게 생겼을 경우 -> 카메라 센서가 어떻게든 밝게 찍어보려고 노오력을 했기 때문이다. (ISO를 높였음) 그러나 이렇게 ISO를 높이면 센서 특성상 노이즈가 굉장히 심해진다.
  • 인수분해하는 한석원마냥 잔상이 생긴 경우 -> 카메라가 "엥? 1/30초로 찍으면 양반 김 한장 나오겠는데? 넉넉하게 3초동안 셔터 열어놔야지" 하고 자체판단한 경우다. 보통 자동 모드를 켜놓고 밤에 사진 찍으면 이렇게 나온다.

보통 야간에 찍는 사진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플래시"를 터뜨리면서 찍도록 되어있다. 이 방법은 지상에 있는 물체를 찍을 때는 쓸만하다, 그러나 밤하늘에 플래시를 터뜨려봤자 별이 잘 찍힐 리는 없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밤하늘은 노출 시간이 답 (feat. 삼각대)

정답은 노출 시간을 매우 길게 늘이는 것이다. 대낮은 1/30초로도 충분하지만, 밤하늘은 15초에서 30초정도로 길게 노출해서 찍어줘야만 별빛이 제대로 담긴다. 이 사실만 알고 있다면, 폰카로도 밤하늘 찍기가 가능해진다. 카메라 앱에서 노출 시간만 충분히 늘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폰은 기본 앱에 노출 시간 조정이 없다고 한다. 천체 사진용 앱을 받든가 해서 해결하도록 하자.)

그런데 30초동안 카메라를 계속 들고 찍으면 별들마저도 인.한.잔.생(인수분해하는 한석원마냥 잔상이 생김의 줄임말)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 닝겐의 몸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봐도 1mm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삼각대가 무조건 필요하다. 즉, 15초 이상의 긴 노출 시간 + 삼각대만 있으면 천체 사진을 찍기 위한 최소 조건을 만족한다는 소리다. 렌즈 선택권이 없는 폰 카메라 입장에선 이게 유일한 선택지가 된다. 자, 지금 당장 삼각대와 폰 들고 별 찍으러 나가자.

심화 학습 - 더 간지나게 찍고 싶다면?

DSLR이나 미러리스 같은 경우에는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추가 조건이 붙는다.

렌즈는 광각으로

광각이면 좋다. 망원 렌즈는 성운이나 은하계 하나를 대상으로 크게 찍기 위한 용도로 쓰인다. 별빛이 내리는 듯한 밤하늘을 찍으려면 넓은 광각렌즈어야 한다. 내가 사용한 것은 삼양 옵틱스의 14mm짜리 초광각렌즈였다. 이 렌즈는 방습 방진 기능까지 달려있어서 대놓고 "나 은하수 촬영용임 ㅇㅇ 빨리 고르셈" 이라고 온 몸으로 말하는 렌즈다.

초점 거리는 무한대로

초점 거리 조절은 무조건 수동으로, 그리고 무한대 초점으로 찍어야 한다. 폰카는 어차피 초점 조절이 의미가 없으니 언급하지 않았는데, 별은 최소 몇 광년 이상 떨어진 물체이므로 무한대 초점(주로 풍경을 찍기 위해 사용하는 초점) 거리를 설정해야 한다. 찾아보니, 대부분의 렌즈에 ∞라고 무한대 초점이 표시되어 있긴 한데, 이게 진짜 무한대가 아닌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미리 낮에 촬영지에 가서 무한대 초점을 미리 파악해두라고 하던데.. 나는 그냥 렌즈의 초점을 무한대까지 쭉 돌린 다음에, 아주 살짝만 반대 방향으로 다시 돌렸다. 그렇게 찍으니 얼추 맞더라. 초점을 여러번 돌려가면서 테스트 해보면 될 것 같다.

초점 거리를 잘못 잡으면 이렇게 흐리멍덩해진다.

심화 학습 2 - 사람도 같이 찍을 수 있나요?

쌉가능~~~ ILCE-7M3/15s/ISO 1250/Samyang MF 14mm F2.8 MK II SONY FE

지금까지 알려준 방식대로 사진을 찍으면 사람은 명탐정 코난에 나오는 범인 실루엣 마냥 새까맣게 나온다. 그러나 플래시를 터뜨리는 타이밍을 잘 조절하면 위와 같은 사진도 가능하다. 구체적인 방법은 이 유튜브 클립을 참조하면 된다.

아니 그래서 별을 어디서 볼 수 있는데?

별을 찍는 방법을 열심히 설명했으나, 사실 다들 이런 생각일 것이다. '그 전에 별 보려면 어디 가야함? 몽골인가?' 우리나라에도 별을 볼 수 있는 곳이 제법 된다. 수도권에서는 경기도 양평의 벗고개길이 가장 유명할 듯 싶다. 자세한 사항은 구글링을 해보면 나올텐데, 워낙 인기가 많아서 쉽지 않을 수 있다.

벗고개길에서 찍은 동기들과 함께 찍은 사진 ILCE-7M3/25s/ISO 1250/Samyang MF 14mm F2.8 MK II SONY FE

광공해지도를 활용해보자

근처에 불빛이 없어야만 밤하늘이 보인다는 것은 모두가 알 것이다. 이런 조명 때문에 생기는 피해를 광해(光害, light pollution) 혹은 광공해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확인할 수 있는 지도를 광공해지도라고 부른다. 이 지도에서 초록색 내지는 연두색 정도에 해당하는 지역만 찾아가도 별을 보기엔 충분하다. 내 지역 근처에 별을 찍을만한 곳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지도를 참고해보자.

달이 뜨지 않는 날을 골라야 한다

의외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달이 제일 큰 광공해이다. 흔히들 밤하늘을 그릴 때 별과 달을 같이 그리고는 하지만, 달이 밝을 수록 별은 잘 안 보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달의 영향을 제일 적게 받는 날이 좋다.

달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달력. 이 달력에서 12일이 제일 적기다. 물론, 날씨가 맑아야 할테지만.

달이 뜨지 않는 날은 사실 존재하지 않지만, 적어도 달이 일찍 지거나, 빛나는 면적이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날을 고를 수 있다. 위 스샷은 달의 위상을 나타내는 지도다.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적절히 월삭 전후를 골라 사진을 찍도록 하자. 물론 하필 그 날에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온다면 그냥 포기해야 한다. 천체 사진 촬영은 장비 준비보다 오히려 시기 고르는 것이 더 어렵다. 파이팅!

마치며

사실 내 천체 사진 입문은 우연하게 시작됐다. 막연하게 찍고는 싶어서 이것 저것 조사도 해보고 광각 렌즈도 미리 사뒀지만, 막상 근처에 찍을 만한 데를 찾기도 어렵고 해서 풍경 사진 찍는 용도로만 쓰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여름 때, 친구들을 본가에 불러 부모님이 운영하는 주말 농장 근처의 컨테이너 박스를 거점삼아 MT를 즐기게 되었는데, 운이 좋게도 이 날이 별을 관측하기에 최적기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밤에 밖을 내다보았다가 그림과도 같은 밤하늘을 구경하게 됐고, 그 때서야 나는 그동안 별러왔던 천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흥미를 더 느끼게 되고, 자신감도 얻게 되어서 여러번 출사를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은 처음이 제일 어려울 뿐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내가 천체 사진에 입문할 수 있게 된 데에는 구글신의 도움이 가장 컸다. 그래서 나도 나와 같은 천체 사진 늅늅이들에게 용기(?)를 주고자 이 글을 썼다.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찍었던 사진 몇 장 첨부하고 마치겠다.

좌 - 플레이아데스 성단/우 - 화성. 밤하늘을 찍은 것을 확대했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일주운동을 하는 별들.. 인데 중간에 구름이 끼어들어서 망했다.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지나가는 오리온자리 유성우. 사진 4장정도를 오버레이 시켜서 만들었다.
벗고개 터널 위를 찍은 사진. 여름에 찍었을 때보단 은하수가 많이 옅어져있다.

마지막으로, 처음 보는 별을 우리가 다 알아볼 리가 없으므로 Star Chart나 Stellarium같은 앱을 설치해서 가는 것을 추천한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