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5. 00:53ㆍHobby/Photo-Trip
오로라는 어떻게 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로라는 운이 좋으면 그냥 숙소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잘 보기 위해서는 인공적인 빛이 없는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별 보는 것과 똑같다. 그렇다면 그냥 지도상에서 아무데나 찍고 가면 될까?
시도해보진 않았지만 렌터카를 빌려서 본인이 직접 찾아 이동하는 방법도 가능은 할 듯 하다. 그런데 완벽한 타지에서 한 밤 중에 인적이 드문 곳으로 차로 이동을 한다는 것, 생각보단 쉽지 않을 것 같다. 오로라를 잘 볼 수 있는 곳을 찾는 것도 문제고, 이동하는 것도 문제고, 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또 어떻게 넘어가야 할 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우리는 일찌감치 '오로라 투어'를 알아봤다.
오로라 투어를 araboza
트롬소의 오로라 투어는 visittromso 라는 홈페이지(노르웨이 관광청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로 보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종류가 다양하다, 크루즈에서 오로라를 보는 투어, 4명의 소수 정예로 이동하는 투어, 반대로 100명이 넘는 인원이 다 같이 이동하는 투어, 식사를 주는 투어, 사진 찍어주는 투어, 캠프파이어를 하는 투어 등등. 활동 내용만큼이나 가격도 다양했다.
나는 투어 선정을 위해 약 20가지의 투어를 조사했고, 오랜 회의 끝에 아래와 같은 조건을 전제로 투어를 선정하기로 했다.
- 적당한 인원 : 소수 정예면 비싸고, 대인원이면 투어의 퀄리티가 의심스럽다. 사진 찍을 시간은 있을까?
- 호텔 리턴 : 투어가 끝나면 새벽이 된다. 숙소로 다시 데려다주는 투어여야 한다.
이것 외에는 크게 고려할 사항은 없었다. 사진을 찍어주는 옵션은 우리에게 불필요해서 빼고 싶었지만, 어지간한 투어는 전부 제공하고 있었기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렇게 선정된 투어는 Polar Northern Lights chase from Tromso in a small group. 투어사는 Polar Adventure였다.
(원래 visittromso에 있던 투어인데 거기에선 삭제되었다. 참가인원도 16명에서 늘어난 듯?)
이 투어는 우리의 선정 조건과 별도로 캠프파이어와 식사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집결지로 모여라
투어에서는 "래디슨 블루 호텔(Radisson Blu Hotel)에 모여라"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시간에 맞춰서 가 보니 우리만 있는 것은 아니었고, 여러 여행자들ㅡ딱 봐도 "우리 오로라 보러 갈 거임" 이런 모습ㅡ이 호텔 로비에서 몸을 녹이며 각자 자신들의 투어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치의 민족인 우리는 "호텔 투숙객도 아닌데 로비에 들어가 있어도 되나? 아씨 추운데.." 하면서 쭈뼛쭈뼛하다가 로비에서 대기를 했다.
그렇게 "오늘 오로라 볼 수 있을까?" 등의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미니 버스 하나가 앞에 정차했다.
안 좋은 소식과 더 안 좋은 소식이 있다. 뭐부터 들을래?
사실 현관을 나설 때부터 어느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날이 맑은 편은 아니었고, 구름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래도 날씨가 모든 곳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잘 찾아다니면 좀 개인 데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7시간이나 있을 건데, 기다리다 보면 날이 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정말 못 볼 날씨면 투어가 취소됐겠지...
그러나 가이드가 버스에 탑승하자 마자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 날이 매우 좋은 편은 아니다. 경험으로 봤을 때 오로라 사진은 찍을 수 있을 것 같은데, 100% 확신은 못 한다. 원하지 않는다면 투어를 여기에서 취소하고 돌아가도 된다. 환불을 해 준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 가기로 결정해놓고 못 봤을 경우에는 환불해드릴 수 없다.
이미 신청할 때도 닳도록 봤던 고지사항이었다. '못 보진 않을텐데 확실하진 않다'는 소리. 화려한 오로라는 이미 물건너갔구나 싶었다. 그러자 참가자 중 한 명이 '내일은 그럼 어떤데요?' 라고 물어보자 'even worse(오늘보다 더 안 좋을 거에요)' 라고 가이드가 답했다. 그런 상황이 되자, 모두들 자포자기 심정으로 '그래, 뭐 내일이 더 안 좋다는데 달리 방법이 있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갑시다' 라며 투어를 강행하는 데에 동의했다.
그렇게 불안감을 안고 버스는 출발했다...
사진이 항상 현실보다 낫다
천체 사진을 그래도 여러번 찍다보니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항상 사진이 현실보다 낫다는 것. 날씨가 안 좋아 허탕을 치고 돌아온 날도 라이트룸만 만져주면 말도 안 되는 그림이 되곤 했고, 그런 사진을 포스팅할 때 "진짜 이래요?? 우와" 하는 반응을 받을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했었다. 프사기꾼에 이은 풍경사기꾼..
그래서 오로라 사진들을 볼 때도 "항상 이것보단 덜하겠거니"하는 생각을 해 왔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카메라 렌즈의 성능이 우리의 눈보다 좋을 수밖에 없으니...
우리는 총 서너 군데 정도를 이동했다. 지도에 있기는 한 걸까 싶은 공터들 위주로 돌았고, 각 스팟에 정차할 때마다 가이드가 먼저 내려서 밖에서 시범촬영을 해본 다음에 들어와서 "괜찮네요! 나오셈" 하고 말해주는 순서였다.
첫 번째 스팟은 어둡기만 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구름밖에 보이지 않는데 가이드는 "사진 찍으면 나온다" 라며 사진 찍을 사람들로 줄을 세우고 있었다. 육안으론 보이지 않는데 사진으로 보인다.. 사실상 허탕이었다. kooma는 "아니 이럴거면 방구석에서 편하게 오로라 사진을 보지 뭣하러.." 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 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하늘에 오로라 실루엣(?)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구름과 구분이 힘들 정도로 채도가 굉장히 낮은 모습이었지만, 오래 기다리고 있자니 초록색도 드문드문 보였다. 우리는 그렇게 좋은 타이밍을 기다리며 사진을 계속 찍었다.
마지막 스팟은 캠프파이어를 하는 곳이었다. 스탭들이 식사와 장작들을 들고 내렸고,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오로라가 보이는 하늘 아래에서 캠프파이어라, 묘사만 들으면 정말 감성적이지만 오로라는 그 정도로 잘 보이진 않았고, 캠프파이어의 불빛 때문에 사진은 점점 찍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서로 돌아가며 불빛 가리개(?)가 되어줘야만 했다.
그러면서 마시멜로우도 구워 먹고, 라자냐(같은 것)를 뎁혀 먹고, 커피를 따라 마시고...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을 때웠다.
역시 천체사진은 존버였다. 오래 기다리고 있자니 오로라가 점점 잘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눈이 어둠에 적응한 것도 있겠지만, 실제로 날이 조금씩 걷히고 오로라가 강해지고 있었다. 가이드는 이 캠프파이어 스팟을 마지막으로 이동할 계획이 없어보였고, 우리는 대부분의 오로라 사진을 여기에서 찍었다.
첨언하자면, 가이드 분도 따로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셨다. 그런데 그 사진들을 올리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찍은 게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우린 돌아갈 때까지 내내 셔터를 눌러댔다. 그것이 바로 한국인 아닌가?
이 정도면 성공이지
비록 날도 흐렸고, 오로라도 최고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실제로 일렁이는 오로라를 봤다는 점에서 나는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통계적으로도 그런 극적인 오로라는 보기 힘들다고들 했다.
그렇게 새벽이 되자, 버스는 다시 우리를 태우고 숙소 근처로 데려다 줬다. 그런데 숙소 근처에서도 초록색 오로라는 일렁이고 있었다. 이거 어쩌면 투어 안 해도 방구석에서 볼 수 있었던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잠깐 스쳤지만 바로 갖다 버렸다.
숙소로 돌아온 후에는 간단(?)하게 피자를 해 먹었다. Extra라고 불리는 (노르웨이의 국민 SSM인 듯) 마트에서 사온 오븐용 피자를 적당히 데웠는데(북유럽 감성인지 신기하게도 가는 숙소마다 오븐은 다 있었다), 상당히 괜찮았다. 어지간한 시중에서 파는 피자 뺨 후려칠 정도.
거기에 "노르웨이까지 왔는데 여기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술을 사야하지 않겠어?" 라는 생각으로 사온 Arctic 맥주. 대놓고 노르웨이 국기가 박혀있는 맥주였는데, 이 또한 괜찮았던 걸로.. 기억 한다. (맥주 맛 잘 기억 못하는 편)
그렇게 우리는 오로라 관측 성공(?)을 축하하는 축배를 들고나서 바로 곯아떨어졌다.
뚜비컨티뉴